From Maesot2016. 2. 6. 15:31


타이-버마 국경엔 정확히 인구수를 따지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난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UN에 등록된 공식 난민촌만 9개고 그 난민촌에 거주하는 UN등록 난민만 약 15만명. 하지만 등록 되지 않은 난민들의 수를 더하면 9개의 난민촌에만 약 30만명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고, 추정한다.

그나마 난민촌에 거주하는 공식 난민들은 하루 두끼의 식량을 UN을 통해 지원 받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난민촌 밖의 난민들.

그들의 인구수는 대략 3백만으로 추정할 뿐 정확한 통계를 본적은 없다. 여러가지 이유로 고국을 떠나온 사람들, 이주자들, 비합법적 체류자들. 버마 내부의 여러가지 정치적 환경적 요인을 감안하면 우린 이들 모두를 난민의 범주에 넣어야 한다.

현지에서 활동하며 가장 행복한 순간이자 또 가장 마음 아픈 순간은 아이들의 끼니를 챙길 때이다.

넉넉히 채워주고 싶고, 많이 먹이고 싶은데 늘 예산 부족이다. 한창 자라야할 나이에 영양분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는 이곳의 아이들은, 자주 아프다.

그나마 이렇게 학교라도 나오는 아이들은 점심이라도 먹는다. 여러가지 이유로 학교에 오지 못하는 아이들은 어디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있을런지.

별볼일 없는 한끼 식사지만 아이들이 기쁘고 즐겁게 먹으니, 무엇보다 아이들이 배곯지 않아도 되니 기쁘다가도...

이 별볼일 없는 한끼 식사도 챙겨먹을 수 없는 더 많은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많이 아프다.

꼬질꼬질한 옷을 입고 꼬질꼬질한 손을 내밀며 품속에 안겨오는 아이들. 하지만 세상 그 누구의 미소보다 아름답고 예쁜 미소를 짓는 이 아이들이 굶지 않는 세상이 하루라도 빨리 왔음 좋겠다.
Posted by Lucia.K
From Maesot2015. 11. 26. 21:39

필드.

늘 나는 필드에 서 있다.
필드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람들과 우정을 나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사랑한다.


나는 국제개발 협력 현장에서 일한다.


그러던 내가 데스크웍을 시작했다.
물론 필드웍을 한다고 주구장창
필드웍만 할 수는 없다.
리서치, 제안서 등등...
행정 업무 역시 늘 따라온다.


센터를 셋업하고 있다.
매솟 지역의 시내에 센터를 건축해서
청년들을 위한 직업 훈련원을 기획운영하고,
지역 사회의 공공 교육도 기획하고,
미얀마-태국 국경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모든 우리의 프로젝트를 총괄할 수 있는...
우리의 디자인으로 건물을 올릴 예정이다.


땅을 보러 다닌게 벌써 몇개월째인지.
여튼 땅만 구해지면 공사는 바로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마냥 기다릴 수 만은 없어서
남의 건물에 세들어 살면서 조금씩 시작하기로 했다.


11월 2일.
사무실 셋팅이 끝났고,
필드 담당자인 나는 데스크웍을 시작했다.

1월부터 언어 코스를 시작해야 하고,
진행중인 프로젝트에 대한 페이퍼 셋업을
해야하고 또 사무실과 트레이닝 코스에 대한
운영도 해야하고.

무엇보다 필드웍도 병행해야 하고.


11월 내내 현장에서 또 사무실에서...
정말 미친듯 일하고 있다.


뭐 그렇다고 싫은건 아니다.
힘들고 피곤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난 잘 이겨내고 있다.


난 필드에 서 있다.
난 필드를 사랑한다.
난 데스크 업무도 잘 해내고 있는,
국제개발 현장 스태프다.
Posted by Lucia.K
From Maesot2015. 11. 23. 22:11

추석이 지나고 다시금 오랜만에 블로그질을 시작해볼까 했지만.

역시 난 바쁘다.

다른것에 시간 투자하기 벅찰 정도로
난 바쁘다.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준비 되고 있고,
센터 셋업하랴, 컨텐츠 준비하랴,
늘어나는 방문 팀 일정 소화하랴,
치앙마이, 라오스 다니랴,
밤낮없이 페이퍼웍하랴...

무엇보다 큰 규모의 새로운 프로젝트의
최종 제안서 작업 때문에 도대체가
정신없이 바쁘다.

한국어 하는 스태프는 나 혼자인지라...
한국어 제안서는 오롯이 내 몫이고,
그나마 다행인건 오늘밤 2차 수정분이
마감 될 예정이라는거.

원래 11월은 이렇게 바쁜달이 아니었는데
이것저것 새롭게 시작되는 일들이
많다보니 매솟 생활 7년차에 접어든 이후
첨으로 힘겹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뭐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일이니까.
준비 단계는 이렇듯 욕나올정도로
힘들어도 결국 이프로그램으로 인해
이곳 아이들이, 청년들이 혜택을 받는거니
이렇게 견딜 수 있는거겠지.

이제 마지막 힘이 필요한 오늘밤.
힘내서 끝내자. 내일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Posted by Lucia.K
From Maesot2015. 9. 30. 21:50

2010년도 하반기였던걸로 기억한다.
친하게 지내던 난민가족이 미국으로
재정착 이민을 떠난 것은.


난민 (Refugee)은 전쟁, 박해, 테러,
극도의 빈곤, 기근, 자연재해 등
여러가지 이유로 자기 나라에 살 수 없어
다른 나라로 망명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런 난민이 난민의 신분을 벗기 위한
방법으로는 3가지가 존재한다.


1.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
2. 망명한 나라에서 받아주는 것.
3. 제3국으로 재정착 이민을 떠나는 것.


내가 일하는 곳인 태국-버마 국경의
난민들은 대부분 제3국으로
재정착 이민을 떠남으로서
난민이란 신분에서 벗어난다.


우선은 태국 정부에서는 난민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고
고국인 버마로 돌아가기엔 아직
해결되지 못한 일들이
가득가득하기 때문이다.


제3국으로 재정착 이민을 떠나는
난민들 역시 삶의 환경이 조금 나아질 뿐
서방 국가에서 이민자로 살아간다는게
생각처럼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여튼, 친하게 지내던 난민가족도 미국으로
떠났다. 떠날 때 막내가 2살이었는데 이제
7살이 되어서 나와 영어로 대화가
가능해졌다.



미국은 난민들이 거주한지 5년이 되면
영주권을 준다고 한다. 그러면 미국 여권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이 가족이 떠나 미국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의 가장이 전화로 인사를
전해왔었다. 그간 이 가족과의 연결고리는
오로지 전화밖에 없었는데...


드디어 페이스북으로도 연락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통화도 하고
비디오채팅도 가능해졌다.


곧 여권을 만들거라고 했다.
그리고 내년에 그들이 떠났던 이곳으로
방문을 할 계획이라 돈 버느라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7살이 된 막내 몰로는 내년에
만날때까지 어디 가지 말고 꼭 기다려달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2살 짜리 아가였던 그 녀석의 기억 속에서
그동안 내가 잊혀지지 않고 존재하고
있었다니... 참 감사한 일이다.


그립다.
보고 싶다.
빨리 내년이 왔음 좋겠다.
Posted by Lucia.K
From Maesot2012. 2. 24. 14:24



태국의 딱 주에는 유엔 공식 버마 난민촌이 세 개 있습니다.

가장 먼저 생겼으며 매솟에서 가장 가깝고 또 가장 규모가 큰 곳이 멜라 난민촌이고,

두번째로 생긴 난민촌이 매솟에서 남쪽으로 7시간 거리인 움팡 지역에 있는 노포 난민촌이고,

마지막으로 매솟에서 남쪽으로 3시간쯤 거리의 산 중턱에 있는, 가장 마지막으로 생긴 난민촌이...

바로 옹피앙 난민촌 입니다.



옹피앙 난민촌은 약 2만명이 살고 있는 곳이고,

비록 태국 정부에서는 난민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유엔의 보호 아래 있는 유엔 공식 난민촌입니다.



어제, 2012년 2월 23일 오전 11시 30분경.

옹피앙 캠프에서 대규모 화재가 발생해서 약 1,000가구의 집이 파괴되었습니다.

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난민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태국내의 난민촌에서는 모두 나무를 이용해 집을 짓습니다.

순식간에 대규모로 화재가 번진 이유는 지금이 건기 시즌인데다 특히 어제 바람이 꽤 많이 불었기 때문이랍니다.







개인적으로 옹피앙 캠프의 화재에 대해서 돕고자 하시는 분은,

http://umphiemfirerelief.wordpress.com <--- 이 사이트에서 업데이트 되는 소식 참고하시고, 또 기부 방법 참고해주세요.



 
Posted by Lucia.K
From Maesot2011. 1. 21. 16:39

2010년 11월 7일 버마의 총선이 끝난 직후 

태국 매솟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버마의 미야와디에서

카렌 DKBA와 버마 정부군의 무력 충돌이 있었습니다.


11월 8일부터 태국과 버마의 공식 국경인 프렌드십 브릿지를 통해

넘어온 버마인들은 약 20,000명. 하지만 이들은 11월 9일에서 10일에 걸쳐..

모두 미야와디로 돌아갔더랬죠.


미야와이에서의 무력 충돌 이후,

카렌 DKBA와 버마 정부군의 충돌은 태국-버마의 국경지역에서 

여전히 현재 진형형에 있습니다.


제가 지내고 있는 메솟 근교의 카렌족 마을인 훼이남쿤에서

불과 5Km 떨어진 버마의 '팔루' 지역에서 피신해온 사람들이

우리 마을에 오기 시작한 건 11월 28일부터였나 그랬을겁니다.

11월 28일부터 12월 5일까지,

훼이남쿤 마을에 피신 온 버마, 팔루 사람들은

420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마을과 불과 5km 떨어진 버마의 팔루 지역에서는...

2011년 1월 현재까지도 전투가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고,

팔루에 살던 버마 사람들은 (대부분이 카렌족) 모두 태국 사이드나,

정글로 피신을 한 상태이며, 팔루엔 민간인은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2011년 1월 현재,

우리 마을에 피신해온 팔루 지역 사람들은

이미 600명이 넘었습니다.

이들은 일주일에 한번씩 쌀을 비롯해서 식용류, 콩, 고추가루, 생선젓깔,

그리고 약간의 간식, 라면, 계란, 그리고 옷가지등을..

TBBC, KWO, Good Friend, 메따오 클리닉 등의 단체들을 통해

지원 받고 있습니다.


메따오 클리닉 스탭들 역시 정기적으로 우리 마을로 현장 진료를 나와,

이곳으로 피신한 난민들의 건강을 돌보고 있습니다.





하루 빨리 버마 지역의 상황이 좋아져서,

이들 모두 고향으로, 생활터전으로 돌아갈 수 있길 소망합니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돗자리 하나 깔고 자는,

저 아이가, 비롯 대나무로 이어만든 낡은 집일지라도...

마음 편하게 눈 붙일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버마에 어서 빨리 제대로 된 민주화와 평화가 깃들길....

Posted by Lucia.K
From Maesot2011. 1. 19. 21:19

 

 

벌써 작년이네요.

 

작년 11월 23일부터 28일까지, 6일 동안 KBS 1TV 세계는 지금 팀에서 매솟으로 취재를 나왔었답니다.

 

담당 피디가 매솟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시는 제 보스에게 연락을 해 왔었기에,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방송 코디라는걸 해봤는데요.

 

 


매솟편은 15분씩 2편으로 나누어 2011년 1월 13일과 14일 이틀에 걸쳐 방송 되었는데,


1편은 미얀마 민주화를 꿈꾼다.

 

그리고 2편은 새 단장한 미얀마 난민학교라는 제목으로 방송되었어요.

 

 

 

방송 코디라는 일을 통해, 방송 일은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을 배웠지요.

 

그래도 재밌었답니다. 그리고 매솟에 대해서, 버마 난민들을 한국의 시청자들에게

 

알릴 수 있어서 뿌듯했어요.

 

 

이곳의 사람들… 정치적인 이유로, 경제적인 이유로 비록 자신의 나라를 떠나올 수 밖에

 

없었지만, 이 사람들을 그냥 단순하게 불쌍하게만 생각하지 않길 바랍니다.

 

열악하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이들에겐 희망이란게 있거든요.

 

우리가 조금만 도와주면, 분명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사람들이고..

 

또 우리의 작은 도움이 이들 미래의 작은 발판이 될 수 있습니다.

 

 

KBS 세계는 지금, 매솟편은

 

http://www.kbs.co.kr/1tv/sisa/worldtoday/vod/index.html

 

여기에서 다시 보실 있습니다.

Posted by Lucia.K